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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패 적은 선진국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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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3-12
  • 조회수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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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층의 부패가 심각했던 역사적 사례를 찾는다면, 단연 1780년대의 프랑스를 빼 놓을 수 없다. 세습으로 이어지는 신분마저 쉽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정부의 관직은 대부분 매매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법관직은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니, 다른 부문은 오죽했겠는가. 이런 세태를 반영하여 당시 법관의 취임선서문에는 “나는 법관이 되기 위해 불법적인 돈을 쓰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역사가는 당시의 모든 법관이 위증죄로부터 업무를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앙시앵레짐(구체제 모순)은 1789년 시민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2백년이상이 지난 오늘, 한국의 국회의원 선서에 동일한 문구를 넣는다면 위증죄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정치인에게 보험을 들어야만 하는 한국의 세태를 후세의 역사가는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정치인들의 변명은 수 십 년 동안 변함이 없다. 한국의 상황과 정치제도로는 어쩔 수 없다는 얘기뿐이다. 자신들이 스스로 고쳐야할 법과 제도는 외면하고, 불법을 서슴지 않는 행태를 수 십 년 동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입법기관은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가 서구에서만 꽃 핀 이유
자본주의는 왜 서구에서만 성공하는 것일까? 시장경제가 수많은 개도국에서 혼미를 거듭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다. 자본의 속성은 유사할 텐데, 왜 이런 불가사의가 나타나는 것일까?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남미 최고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는 그 ‘자본의 미스터리’를 법과 제도의 합리성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NBER(미국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와도 일치한다. 시장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가름하는 핵심이 바로 명확한 사유재산권의 확립과 합리적인 정치제도의 운용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서부개척과 산업혁명, 세계대전을 겪으며 정치적 부패, 사회적 혼란, 노사갈등과 같은 격동적인 변화를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의 성공은 혼란의 고비마다 입법기관이 합리적인 법 제도를 정립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지역구의 표심(票心)이나 계층간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법 제도의 합리성이 시장경제를 꽃피우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굳이 입법기관의 중요성을 서구의 사례에서 찾아 볼 필요도 없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가장 비효율적인 집단으로,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기업인까지 오염시키는 부패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부패의 수렁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나라일까?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기업인은 어쩔 수 없이 정치인에게 보험금(?)을 납부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구조적 부패를 막으려면 정치제도는 물론 경제법규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며, 경제적 관점에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한국 땅에 시장경제가 바르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선 세계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다는 핀란드를 생각해 보자. 핀란드 의회가 내 놓은 자료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핀란드가 부패지수가 낮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법률의 기초가 되는 평등과 객관성, 균형성 및 합목적성 등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화 지수가 높아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졌으며, 공무원에게 신분과 적절한 임금을 보장해 주는 등 사회전반의 투명성을 제고해 온 결과라는 해석도 부연돼 있다.
아시아에서는 공무원의 부패지수가 싱가포르에서 가장 낮게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은 핀란드와 유사하다. 민간기업을 웃도는 수준의 보상체계와 철저한 책임에 바탕을 둔 인사제도가 국가투명성 제고의 1등공신이라는 지적이다. 세계 어디서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자신의 책임과 성과보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인사제도가 운용되는 곳에는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후진국에서 부패가 만연되는 것도 인사가 철저한 책임과 성과 보상체계에 의해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권력을 가진 ‘집권자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부패 적은 선진국 기업규제 적어
경제발전과 권력층의 부패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물론 선진화될수록 부패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패가 반드시 경제발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후진국에서도 행정이 투명한 나라가 있는 반면 선진국에서도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면 절대적인 소득수준보다는 정부가 어느 정도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부패의 정도가 결정된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논리다.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여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나라에서는, 반드시 부패의 유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기업은 당장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한다. 규제를 통해 특혜적인 혜택을 누리는 기업은 그 혜택을 연장하기 위해 로비를 하고, 진입규제로 미처 진출하지 못한 기업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로비를 하게 한다.
정부가 각종 사업에 인허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기업은 정치인에게 더 많은 로비를 한다. 그래야 기존의 독과점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관점에서 정치인과 기업의 부적절한 유착관계를 사라지게 하려면, 우선 각종 경제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어주어야만 한다. ‘정부의 보이는 손’이 없어도 경제가 소리 없이 시장에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면, 정경유착의 뿌리는 상당히 제거될 수 있다. 경제 선진국일수록 부패가 적은 이유는 소득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바로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적기 때문이다.
경제는 항상 시장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시장의 흐름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거나 조정하려고 시도하면 반드시 경제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마피아가 등장한 것도 술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너무 엄격했기 때문이며, 암달러상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외환시장의 규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불법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정부의 시장개입부터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시장을 부패로 이끄는 네 가지 유형
정부와 정치권에 새로운 인재가 지속적으로 수혈될 수 있는 인사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정치신인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며, 선거운동을 비롯한 각종 활동에서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다. 정부의 관료제도도 마찬가지다. 고시제로 대표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단 한번의 시험만으로 평생 동안을 고급관료로 지낼 수 있다.
새로운 인재가 중간간부로 진출할 수 있는 제도가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폐쇄적인 인사제도에서는 행정의 효율성이 당연히 저하되고, 외부로부터의 경쟁이 없으며, 비효율적인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부패의 고리를 견고하게 만든다. 고인 물이 썩어가는 과장과 유사하다. 선진국이 고위 관료를 계약직으로 임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선별하는 안목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 우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불러오는 인기 영합 주의자를 낙선시킬 줄 알아야 한다. 부채를 탕감하고, 신용불량을 정부 예산으로 정상화시켜 개인의 짐을 정부가 덜어 주겠다고 공약하는 사람도 유의해야 한다. 과연 그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이것은 신용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시장경제의 핵심을 파괴시킨다.
시장에 친화적인 정책보다는 경제를 법과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기업을 이익을 좇는 경제주체라고 여기지 않고 법과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의 공익기관이라고 믿는 사람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평등이나 형평을 개혁의 목표로 삼는 정치인도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감각이 무딘 사람은 더 말할 나위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면서 어떻게 세계 속에 살아 움직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겠는가.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들 때가 많다. 빚을 탕감하자는데 싫어할 유권자가 어디 있겠는가. 눈앞에 보이는 내 이익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엉뚱한 사람이 여의도로 올라오는 것은 바로 유권자의 착각 때문이다. 그 착각이 바로 우리 땅에 시장경제를 꽃 피우지 못하게 만드는 미스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권자가 좋은 인재를 외면한 결과, 오늘의 정치판이 사류로 득실거리고 새롭게 기웃거리는 사람마저 신통치 않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패없는 선진경제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개혁과 함께, 과감한 규제철폐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방과 경쟁을 유도하는 관료제도의 개혁도 필수적이다. 국민들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정치인을 제대로 선별할 수 있는 안목도 길러져야 한다. 이런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경제는 계속 정치의 덫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정갑영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정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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