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꿈 T-50으로 날개 달다
- 담당자관리자
- 담당부서
- 연락처
- 등록일2014-03-12
- 조회수347
-
첨부파일
지난 8월30일,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양산 1호기가 마침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1992년 10월 탐색개발을 시작으로 2001년 8월 최초비행을 성공한지 3년만에 실전 배치될 양산 1호기를 생산해 내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성공했다. ‘자주국방’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밤을 낮 삼아 초대형 국책사업에 매진한 1,300여 명의 KAI 연구원의 피와 땀이 서린 초음속 고등훈련기 생산 현장을 찾았다.
***********
지난 8월30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바로 옆에 자리한 공군 훈련비행단. 활주로를 질주하던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양산 1호기가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순간 장성섭 상무, 고대우 팀장 등 1,30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의 입에서는 10여 년에 걸친 대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는 환호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기 생산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일명 ‘골든 이글(Golden Eagle)’로 불리는 T-50. 이는 KAI가 한국 공군의 고등훈련기와 경공격용 제트기 양산을 위해 개발한 초음속비행기.개발 초기에는 ‘KTX(Korean Trainer Experi-mental)-2’로 불리기도 했으나 1999년 공군 창립 50주년을 기려 T-50으로 공식 명명됐다.
T-50 개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89년, 공군이 새 고등훈련기 도입을 검토하면서부터다. 한번 도입하면 30년 이상 사용하는 고등훈련기를 이왕이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기됐다. 공군도 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990년 고등훈련기 20대를 영국의 BAE사로부터 도입하면서 고등기술기 제작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공군은 1993년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KF-16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고등훈련기 제작 기술 전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휴일 반납 설계도면 작성과정 8개월 앞당겨
1992년 국방과학연구소 기술진에 의해 탐색·개발이 시작된 T-50 프로젝트가 KAI으로 넘어온 것은 1997년 10월, 본격적인 ‘체계 개발’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T-50 개발을 주도하던 전영훈 박사가 “개발자와 생산자가 같아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며 T-50 개발을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닌 삼성항공(KAI 전신)이 맡아야 한다고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KAI로 넘어온 T-50 프로젝트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한 직후 외환위기가 터졌던 것이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환율이 달러당 900원이었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2,000원으로 뛰니 엄청나게 부풀어오른 비용 때문에 6개월 동안은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고대우 개발본부 선행연구팀장은 “그럼에도 계획보다 설계도면 작성 과정을 8개월이나 빨리 끝냈으며, 시제기 첫 공개 행사도 3개월 앞당겼다”며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밤낮은 물론 휴일과 명절까지 반납한 KAI 연구원들이 피와 땀을 쏟은 결과다. T-50 개발 과정에서 연구원 2명이 과로로 순직한 사건이 그들의 이런 노력을 증명한다.
KAI가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 유례 없이 일정을 앞당겨 T-50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는 실제 제작 전에 실물 모형을 만드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KAI는 그 과정을 컴퓨터시뮬레이션(CATIA)으로 대체했다. 과거 미국 보잉사에서 일부 과정을 CATIA로 대체한 경우는 있지만 전 과정을 CATIA로 제작한 것은 KAI가 세계 처음이다.
록히드사, KAI 기술력 인정 이의 달지않아
“핵심 기술 지원을 위해 파견된 록히드사 측에서는 우리가 세운 개발 일정을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했죠. 일정을 늘리거나 인원을 늘리라고 했어요. 하지만 공군 측에서 일정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비용 문제를 들어 인원을 늘리는 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고 팀장은 그 때문에 “실물모형 제작을 CATIA로 대체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따르기는 했지만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AI가 개발 일정을 맞추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던 록히드 측은 그 뒤로 다시는 KAI 측 판단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후 록히드는 미국 차세대 주력 전투기 JSF 개발 과정에 T-50 개발에 참가한 엔지니어를 발탁하기도 했다. KAI의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KAI는 또 개발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설계자와 검토자는 물론 설계도면의 진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PDM을 개발했다. 계획보다 공정이 늦어질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그치다 보니 연구원 중 일부는 아예 침낭을 싸들고 와 연구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강행군 끝에 KAI는 스스로 세웠던 개발 일정을 더 단축해 2001년 9월 시제기를 완성했다.
T-50은 이후 1년간의 지상 테스트를 거쳐 2002년 8월20일 마침내 성공적으로 초도비행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KAI 관계자들과 달리 공군은 초도비행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T-50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날 초도비행 행사는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날 이후 T-50이 날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공군에서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뒤 T-50은 공군이 요구한 1,100여 회 시험비행을 완수하고, 마침내 2005년 8월30일 1호기 출고를 시작으로 양산에 들어간 것이다. T-50이 양산을 시작했다는 것은 기술력과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초음속 고등훈련기 길 열어
고 팀장은 “T-50 개발은 우리나라도 이제 초음속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T-50은 비록 고등훈련기로 제작됐지만 경공격기(A-50)로 개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KAI는 T-50 시제기 4대 중 두 대를 A-50으로 만들었다. A-50은 T-50에 공대지 미사일, 레이저 유도 폭탄 등 경공격 무기를 장착한 전투기다. A-50은 KF-16에 버금가는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 전자장비를 추가로 장착할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KAI는 A-50을 향후 F-16에 맞먹는 전투기(F-50)로 개량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고 팀장은 “T-5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금이 바로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T-50 후속 프로젝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50을 개량해 F-50을 제작한다는 것은 연구원들의 바람일 뿐 아직 공군 측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는 T-50개발비용의 50%에 해당하는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팀장은 “결정이 늦어질 경우 10여 년차 연구원들이 그대로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T-50은 다음달부터 공군에 인도되며, 2007년부터 공군 고등훈련 비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KAI는 우리 공군이 필요로 하는 만큼 T-50 생산을 계속할 예정이다. 나아가 현존하는 고등훈련기로는 가장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향후 30년간 전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의 25%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KAI의 목표다.
***********
지난 8월30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바로 옆에 자리한 공군 훈련비행단. 활주로를 질주하던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양산 1호기가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순간 장성섭 상무, 고대우 팀장 등 1,30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의 입에서는 10여 년에 걸친 대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는 환호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기 생산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 |
일명 ‘골든 이글(Golden Eagle)’로 불리는 T-50. 이는 KAI가 한국 공군의 고등훈련기와 경공격용 제트기 양산을 위해 개발한 초음속비행기.개발 초기에는 ‘KTX(Korean Trainer Experi-mental)-2’로 불리기도 했으나 1999년 공군 창립 50주년을 기려 T-50으로 공식 명명됐다.
T-50 개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89년, 공군이 새 고등훈련기 도입을 검토하면서부터다. 한번 도입하면 30년 이상 사용하는 고등훈련기를 이왕이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기됐다. 공군도 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990년 고등훈련기 20대를 영국의 BAE사로부터 도입하면서 고등기술기 제작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공군은 1993년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KF-16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고등훈련기 제작 기술 전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휴일 반납 설계도면 작성과정 8개월 앞당겨
1992년 국방과학연구소 기술진에 의해 탐색·개발이 시작된 T-50 프로젝트가 KAI으로 넘어온 것은 1997년 10월, 본격적인 ‘체계 개발’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T-50 개발을 주도하던 전영훈 박사가 “개발자와 생산자가 같아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며 T-50 개발을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닌 삼성항공(KAI 전신)이 맡아야 한다고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KAI로 넘어온 T-50 프로젝트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한 직후 외환위기가 터졌던 것이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환율이 달러당 900원이었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2,000원으로 뛰니 엄청나게 부풀어오른 비용 때문에 6개월 동안은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고대우 개발본부 선행연구팀장은 “그럼에도 계획보다 설계도면 작성 과정을 8개월이나 빨리 끝냈으며, 시제기 첫 공개 행사도 3개월 앞당겼다”며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밤낮은 물론 휴일과 명절까지 반납한 KAI 연구원들이 피와 땀을 쏟은 결과다. T-50 개발 과정에서 연구원 2명이 과로로 순직한 사건이 그들의 이런 노력을 증명한다.
KAI가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 유례 없이 일정을 앞당겨 T-50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는 실제 제작 전에 실물 모형을 만드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KAI는 그 과정을 컴퓨터시뮬레이션(CATIA)으로 대체했다. 과거 미국 보잉사에서 일부 과정을 CATIA로 대체한 경우는 있지만 전 과정을 CATIA로 제작한 것은 KAI가 세계 처음이다.
록히드사, KAI 기술력 인정 이의 달지않아
“핵심 기술 지원을 위해 파견된 록히드사 측에서는 우리가 세운 개발 일정을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했죠. 일정을 늘리거나 인원을 늘리라고 했어요. 하지만 공군 측에서 일정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비용 문제를 들어 인원을 늘리는 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고 팀장은 그 때문에 “실물모형 제작을 CATIA로 대체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따르기는 했지만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AI가 개발 일정을 맞추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던 록히드 측은 그 뒤로 다시는 KAI 측 판단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후 록히드는 미국 차세대 주력 전투기 JSF 개발 과정에 T-50 개발에 참가한 엔지니어를 발탁하기도 했다. KAI의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KAI는 또 개발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설계자와 검토자는 물론 설계도면의 진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PDM을 개발했다. 계획보다 공정이 늦어질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그치다 보니 연구원 중 일부는 아예 침낭을 싸들고 와 연구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강행군 끝에 KAI는 스스로 세웠던 개발 일정을 더 단축해 2001년 9월 시제기를 완성했다.
T-50은 이후 1년간의 지상 테스트를 거쳐 2002년 8월20일 마침내 성공적으로 초도비행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KAI 관계자들과 달리 공군은 초도비행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T-50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날 초도비행 행사는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날 이후 T-50이 날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공군에서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뒤 T-50은 공군이 요구한 1,100여 회 시험비행을 완수하고, 마침내 2005년 8월30일 1호기 출고를 시작으로 양산에 들어간 것이다. T-50이 양산을 시작했다는 것은 기술력과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초음속 고등훈련기 길 열어
고 팀장은 “T-50 개발은 우리나라도 이제 초음속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T-50은 비록 고등훈련기로 제작됐지만 경공격기(A-50)로 개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KAI는 T-50 시제기 4대 중 두 대를 A-50으로 만들었다. A-50은 T-50에 공대지 미사일, 레이저 유도 폭탄 등 경공격 무기를 장착한 전투기다. A-50은 KF-16에 버금가는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 전자장비를 추가로 장착할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KAI는 A-50을 향후 F-16에 맞먹는 전투기(F-50)로 개량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고 팀장은 “T-5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금이 바로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T-50 후속 프로젝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50을 개량해 F-50을 제작한다는 것은 연구원들의 바람일 뿐 아직 공군 측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는 T-50개발비용의 50%에 해당하는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팀장은 “결정이 늦어질 경우 10여 년차 연구원들이 그대로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T-50은 다음달부터 공군에 인도되며, 2007년부터 공군 고등훈련 비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KAI는 우리 공군이 필요로 하는 만큼 T-50 생산을 계속할 예정이다. 나아가 현존하는 고등훈련기로는 가장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향후 30년간 전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의 25%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KAI의 목표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세요?
- 담당부서홍보담당관
- 담당자이경수 주무관
- 연락처044-203-4571